0. 서문
1인가구들은 겉보기에는 배경과 조건이 매우 달랐다. 하지만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불 꺼진 집으로 향하는 귀갓길이 이들을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로 묶어주었다. 경제적 결핍이 아니라 관계적 결핍이 이들이 겪는 공통의 위험이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그간 해왔던 어떤 연구보다 내 마음에서 크게 부딪히며 요동쳤다. 수많은 인터뷰 참여자들의 목소리를 수집하고 곱씹으며,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 자신과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1. 가보지 않은 길
인간은 외부세계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는 사회적 존재다. 근래 자유를 추구하며 비혼을 선택한 개인들이 많아졌다면, 이 또한 사회적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한 사회의 구성원인 그 누구도 순수하게 혼자서 자기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고 말할 수 없다. 개인주의나 비혼주의와 같은 문화적 트렌드는 1인가구 증가를 가속시킨 촉매일 순 있지만, 이를 가능하게 한 사회구조의 본질적인 변화를 충분히 설명해 주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담론은 본래 관계 지향적인 인간 존재가 혼자서 살아간다는 것이 실제 어떤 현실인지를 가려버린다.
1인가구의 증가는 개인의 선택을 넘어선 거대한 구조적 전환이다. 지구 위의 개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동서남북으로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구 밖에서 보면, 우리 모두는 태양 주위를 서에서 동으로 함께 공전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로운 움직임과 무관하게,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구라는 판 자체가 구조적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2. 나를 갈아 만든 일
3. 나를 수리하는 여가
****이들 1인가구의 라이프스타일은 놀라울 정도로 닮은 면이 있다. 나이, 성별, 직업은 달라도 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삶의 패턴은 엇비슷하다. 일 중심으로 살아가기 위해 결혼을 포기한 것인지, 결혼하지 않았기에 일 중심으로 살 수밖에 없었는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인과관계를 따지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건 현재의 노동시장 구조가 이러한 삶의 방식을 반기고 있다는 것이다.
4. 돈 많은 1인가구, 과연 행복할까?
“사실 전 아무것도 없어요. 가진 게 돈밖에 없다, 돈 외에 소유한 게 거의 없다고 봐야죠.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건강이 안 좋아지고, 치아가 망가지고, 고지혈증이 와서 매일 약을 먹고 있어요. 지금까지 진짜 일밖에 모르면서 살았는데, 좀 벗어나 보려고 노력해도 잘 안 돼요. 사람들을 만나면 되지 않냐 물어보는데, 이제 그거는 또 너무 지친다는 거예요.” (강진모, 중소기업 대표, 53세)
청년 세대는 개인화된 삶을 기본값으로 받아들이는 세대다. 이들에게 결혼을 하지 않는 비혼非婚은 하나의 보편적인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언젠가 결혼하리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일상을 살기보다, 평생 혼자 살 수 있다는 현실적인 예측을 바탕으로 현재의 일상을 꾸려나간다. 따라서 이들은 한 명의 개인으로 생존하기 위해 훨씬 적극적으로 생활역량을 습득하고 있는 것이다. SNS와 유튜브, 각종 어플을 통해 셀프 인테리어, 수리, 세차, 세탁, 요리, 옷 수선하는 방법 등을 배우는 것은 일상 문화가 되었다.
젊은 시절 공부만 하느라 살림을 배울 기회가 없었고, 결국 살림을 외주화하거나 원가족에게 의존하는 고소득 중년 1인가구들과 달리 오늘의 청년 1인가구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돌봐줄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생애 후반으로 갈수록 비물질적 자본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고소득층 1인가구는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려고 더 많은 경제자본을 축적하고자 한다. 정작 그들의 위험은 돈의 결핍이 아니라 생활역량과 관계의 결핍에서 온다. 결국 스스로를 돌보는 생활의 지혜와 신뢰할 만한 타인과의 교류가 부족하다면 삶을 지탱하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알아서 잘 살겠거니” 하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이들은 더욱 자신의 결핍을 숨기며 보이지 않게 고립되어 간다. 2022년 서울연구원은 1인가구의 외로움·사회적 고립 실태조사에서 1인가구를 외로움군, 고립군, 외로움우울군, 고립우울군으로 분류했다. 이때 고학력 관리전문직들은 가장 심각한 유형인 고립우울군에 포진해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5. 왜 셰프도 혼자 살면 라면만 먹을까?
6. 혼자 하는 살림의 경제학
식생활 안정성이란 개념이 있다. 단순히 배만 채우는 게 아니라, 건강하고 활력 있는 삶을 위해 다양한 음식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상태를 말한다. 보통은 경제력이 높을수록 식생활 안정성도 높다. 그런데 2022년 서울연구원 김성아 박사 연구팀이 진행한 1인가구 건강실태 분석에서는 소득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관리직, 전문직과 화이트칼라 1인가구가 식생활 안정성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식사를 거르는 결식률도 제일 높았다. 더불어 2019년 영양학자 정복미 교수가 책임을 맡은 연구에서는 2014~2016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참여자 2만 3080명을 1인가구와 다인가구로 따로 나누어 분석했다. 그 결과도 흥미로웠다. 실제로 소득수준이 높은 1인가구가 콜레스테롤과 열량 섭취량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기존 연구에서는 포착되지 않던 역전 현상이었다. 한마디로 예전에는 저소득층의 특징으로 여겨졌던 나쁜 영양섭취와 질 낮은 식단이 1인가구에서는 고소득층에게 더 많이 관찰되고 있었다.
인터뷰에 참여한 1인가구들이 거듭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살림을 위한 최소 공간이 있다는 말이었다. 1인가구들은 본격적인 살림이 가능하려면 투룸 이상의 주거에 살아야 한다고 했다.
원룸을 떠났을 때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1인가구들의 경험담은 생활공간이 얼마나 자기돌봄과 살림에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주었다. 요리 솜씨가 있어도 고시원에서는 펼칠 수 없고, 친구가 있어도 원룸으로는 초대하기가 쉽지 않다. 르페브르의 말처럼 좁은 공간이 좁은 선택과 좁은 관계를 재생산하는 것이다. 부유한 1인가구라도 방 단위 주거에 머무른다면 마찬가지다. 1인가구에게도 먹고 자고 씻고 쉬는 공간이 분리된 투룸 이상의 주거가 인간다운 삶의 시작이다. 좁은 집에서는 살림이 자라지 않는다.
****왜 1인가구에게는 돈이 삶의 질로 쉽게 전환되지 않을까? 1인가구의 살림을 여러 차원에서 검토하면서 내가 도달한 결론은 이것이다. 이들이 돈으로 주로 구매하는 것이 삶의 질이 아닌 편리함이기 때문이다. 배달 음식, 간편식, 세탁서비스, 각종 플랫폼들은 살림의 번거로움을 대신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이 편의들은 삶을 돌보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가사에 투입될 시간은 아껴주지만, 정작 확보된 시간은 자기를 돌보는 데 사용되기보다 노동시간으로 다시 흡수된다. 그 결과 일상의 돌봄은 점점 더 외면당한다. 돈을 더 벌고 더 쓰는데도 여유로움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7.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생애